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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식당, 넘치는 속재료와 초고속 서빙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에는 이유가 있다.


거제 고현터미널에 도착하니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터미널에서 도보로 7분 정도 걸리는 고현시장 내부에 위치한 ‘충남식당’. 허기진 배를 붙잡고 거제도 현지인 맛집으로 알려진 곳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비릿하면서도 그리웠던 바다 내음이 가득한 수산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국밥과는 너무나 반대 되는 싱싱한 해산물을 보며 여기에 정말 국밥집이 있는 걸까 싶었다. 수산시장에 들어서서 10걸음 내딛고 왼쪽의 좁은 골목을 보면 < 충남식당 > 간판이 보인다. 그냥 골목부터 진짜인 걸 느꼈다.

아직도 궁금한 것은 경상도인데 충남식당으로 이름을 지은 이유가 뭘까? 가끔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 지역과 전혀 다른 지명으로 간판이 큼지막하게 걸리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늘 궁금했다. 이 사장님은 충남에서 오셨을까?




국밥에 소주는 1인 1병, 충남식당의 룰(Rule)

앞, 뒤, 옆 테이블에서는 한때 로망이었던 경상도 사투리가 계속 들려오는 걸 보니 여행자는 우리뿐인 듯했다. 그럼에도 테이블이 꽉 찼는데, 현지인들 역시나 문지방 닳듯이 방문하는 진짜 거제도 로컬 맛집인 듯했다. 오픈된 주방과 꾸밈없는 공간이 음식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주었다.

약간 바래진 은행 종이 달력이 벽에 걸린 곳에서 국밥을 먹으면 음식과 음식점에 더 친밀도가 높아진다. 그 동네와 음식이 나를 대접해주는 느낌이랄까. 시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정겨워지는 게 있다.

5가지 국밥과 내장국으로 구성된 메뉴. 메뉴를 누가 구성했는지 몰라도 참 섬세하다. 어린이국밥과 애기국밥은 아이가 있는 부모들에 대한 배려심이 돋보였다. 그리고 눈길이 갔던 건 주류 쪽인데, 서울에서 5,000원인 소주와 맥주가 여기선 3,000원밖에 안 한다. 다음 스케줄이 없으면 반주를 하고 싶었지만, 일정을 위해서 술은 참아야했다.

하지만 술을 참을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메뉴판 밑에 있는 문구 때문이었다. ‘소주는 1인 1병’. 정말 사장님은 엄청난 내공자임이 틀림없다는 걸 다시 느꼈다. 메뉴 구성하며 1인 1병하며,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신 내공일까? 이런 카피가 있으면 애주가들은 정말 참지 못한다. 그렇지만 참았다. 잘 참았다!

자리에 앉아 망설임 없이 내장과 순대가 들어간 섞어국밥 두 그릇을 주문했다. 주문한지 5분도 채 안 돼서 기본 반찬과 음식이 나왔다. 준비가 된 곳이구나. 이렇게 빠르게 서빙을 해주시니 회전율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푸짐함은 기본, 내 입맛대로 국밥 변주하기

뚝배기를 보자마자 놀란 건 내장과 순대의 엄청난 크기와 둘이 서로 돋보이려고 대결하는 듯 넘치는 양 때문이었다. 거제도 현지인 맛집 아주 도톰하고 실한 한 그릇에 우리는 진짜 소리를 내며 ‘와...’할 수밖에 없었다.

국물 자작한 깍두기와 맵지 않은 고추, 양파, 그리고 양념장들이 기본으로 나온다. 밥이 어디있을까 싶을 법도 한데, 순대와 내장 밑에 깔려있다. 밥이 기본으로 섞여나오니 더 푸짐하게 보였다.

한 숟갈 뜨니 숟가락이 작게 느껴질 만큼 수북한 양의 재료가 나왔다. 확실히 체인점이나 다른 국밥집과 다른 점은 양과 크기부터가 다르다. 숭덩숭덩 잘라놓은 순대는 (과장하자면) 빈츠 정도 되는 크기로 8개 정도 들어있고, 내장은 세는 걸 포기할 만큼 그냥 넘쳐난다.

개인적으로 흰 국물을 선호하지 않아서 다진 양념이나 깍두기 국물을 초반부터 넣어서 먹는데, 거제도 현지인 맛집 충남식당은 뽀얀 국물이 진국이었다. 따로 새우젓으로 추가 양념을 하지 않아도 간이 딱 맞았고 푹 우린 맛이 몸에 퍼졌다.


절반 정도는 허연 국물의 섞어국밥을 즐겨 먹고, 나머지는 깍두기 국물을 부어 빨간 국물로 먹으면 한 그릇에서 2가지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국밥은 한 그릇에 자신의 취향으로 변주할 수 있어 즐거운 음식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동으로 반주를 부르는 감칠맛에 옆에 놓여있던 소주잔을 들고 물만 따라서 짠을 해봤다. 신기하게도 소주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소소하게 만족!

밥 조금, 내장 하나, 순대 하나에 새콤한 깍두기까지 얹어 먹으면 입안 가득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한입에 다 안 넣어져서 나눠서 먹긴 했지만, 가능한 사람이라면 도전해볼만 하다.

굳이 거제에 와서 국밥이라니?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지역에 유명한 국밥집 하나가 있다는 건 동네의 인심과 소소한 삶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바닷마을까지 가서도 충실한 국밥 하나를 담고 왔다.

이 충남식당이 우리 집 앞에 있었다면 일주일에 3번은 출석 도장을 찍었으리라.


TIP

01
고현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이내 거리라 엄청 가까워요! 사거리에서 길 건너자마자 나오는 시장 1입구, 싱싱한 해산물이 잔뜩 보이는 거리가 보인다면 잘 찾아가셨습니다. 들어가서 왼쪽 위를 보시면 < 충남식당 >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02
차를 가져오셨다면 ‘고현시장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시고 주차권을 받으시면 무료입니다.

03
만약 대기 시간이 있다면, 거제의 활기가 넘치는 재래시장을 구경하며 기다려보세요! 시간이 휙 갈 거예요.

04
혼자 오셔서 국밥을 드시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사실 국밥은 혼자 하는 게 진리 아닌가요? 혼자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랍니다!

05
순대를 따로 먹을 때는 새우젓을 살짝 얹어서 먹어보세요. 싱겁지 않고 간이 딱 맞아요!

06
(저희는 못했지만) 술을 드실 수 있다면, 벽에 붙여진 문구처럼 소주를 1인 1병 마셔보세요! 충남식당의 룰을 따르는 것도 재미 포인트. :)


다음 거제 여행기에서 만나요.